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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130

[창조의 CEO 세종] 성공이 쉽지 않음은 병이다 [성공을 측정하라] 세종은 실무형 전문가들을 발굴해 일을 맡겼다. 그래야 결과도 빠르고, 확실했다. 그는 새로운 인재들을 집현전과 여타 부서로 배치시 그들에게 ‘우리는 이미 성공한 팀이며, 너의 능력은 이 어려운 과업을 충분히 해 낼 만큼 인정받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누구도 낙오자나, 회의론자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세종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한계를 긋지 않도록 했다. 세종의 이러한 점은 실제 그들의 성과에 있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인재양성의 총사령관인 세종은 스스로 자기 일에 한계를 모르는 철의 두뇌 집단이자, 각 프로젝트를 위한 강력한 테스크 포스팀(TFT)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시대 음악업적에 절대적인 역량..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어떤 일이 있어도 경영 목표는 달성 한다! 세종이 신생 조선의 CEO가 된 다음에 조선에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변화’였다. 과거의 형식뿐인 ‘위민(爲民)’ - 세계 어느 역사를 봐도, ‘국민을 위해!’라는 것은 정말 오래된 슬로건이 아닌가! - 은 이제 실질적 모습으로, 실생활 속에 구현되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세종 정부의 미션이었다. 세종이 추구한 ‘변화’란 백성들에게 새로운 생활 패턴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했고, 한편 가장 중요하게 ‘삶의 질’을 개선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세종이 이렇듯 삶의 환경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은 고사하고, 백성들로부터 이전 왕조인 고려에 대한 ‘향수’마저 털어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세종으로서는 진정 ‘민주(民主) 경영’..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CEO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 (2) [‘균형 잡기’는 CEO의 필수과목] 세종의 이러한 ‘균형감’은 종교ㆍ철학 분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은 새로운 시대의 유교적 정통성과 뿌리 깊은 불교적 전통 사이에서 공존을 이루었던 CEO였다. 세종의 이러한 면모는 음악 제정 과정에서도 드러나는데, 중국의 음악을 어느 정도 참고로 할 것인지에 대해 그는 신생 조선의 CEO로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세종은 “악무의 제도가 전적(典籍)의 내용과 상치하여 후대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우려하면서도, 무조건적인 중국 모방이나 이전 사례의 재현에 매달리지 않고, 보다 실현 가능한 의례음악의 완성에 목적을 두고 이를 추진해 나갔다. [균형감 잃은 충성은 결코 달갑지 않다] 더불어 그는 균형을 잃은 과다한 충성을 견제하고, 이를 제지 했다. ..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CEO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1) ‘극단(極端)’은 어느 시대나 혼란기에 일어난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 경영에 있어 어느 한쪽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예로부터 국가나 기업 경영의 묘(妙)는 바로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균형’을 잡는 일이다. 최고경영자로서 세종의 경영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세종은 균형 감각이 탁월했다. 극단을 피하고, 어느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추상같이 국가 기강을 지켰다. 세종시대에는 단 한번의 공신 책봉도 없었고, 동시에 정치적 보복도 없었다. 공신책봉이 없었다는 얘기는 역모 등의 혼란이 없었다는 얘기로, 신하들만의 도움으로도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합의에 의해 국가 경영이 ‘무난(無難)’히 이루어졌다는..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사실에 근거해 경영하라 세종의 경영 방식의 특징이자, 원칙의 하나는 사실에 근거한 경영이라는 점이다. 그는 모든 정책을 수립하거나 시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현장성과 사실성의 확인을 우선시 했다. 또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고,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시 ‘피드백 경영’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국가 CEO의 사실주의적 경영 원칙과 즉각적인 반응은 조직 내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신하들에게 창의성을 부여했다. 그는 철저하리만치 조사와 연구에 근거해 업무의 기본 방침을 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으로 “증거가 되고 원용할 바를 살펴보면서 정밀함에 힘쓰고 다스리기를 도모함이 언제나 한결 같았다.”(『세종실록』 32년 2월 17일)고 주변으로부터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주의 경영의 진수] 그의 이러.. 2009. 2. 3.
[창조의 CEO 세종] 비전의 창조자, 미래의 전도사가 되라 한 나라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선, 변화에 앞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변화를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것을 자기 식대로 다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처음의 변화에 있던 사람들과 나중에 있던 사람들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 숫자로만 보면 - 맨 마지막에 단 한 사람만 남기도 한다. 세종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생에 끝까지 자신의 국가 경영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역사를 초월한 경영의 비전을 열어 젖혔다. 그것은 이 땅에 국가 경영을 하겠다고 등장했던 뭇 제왕들 중에서 그가 실로 유일무이하게 새로운 국가경영의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결코 성과에 기반한 ‘업적’.. 200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