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란 끊임없이 두려움과 맞서는 자
미국 아메리칸 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션(AMA)의 연구에 의하면, 기업 임원의 70퍼센트가 비전을 품고 창조적이며 창의적인 성장 동력을 찾는 일보다 ‘위기’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초불확실성의 경영환경에 놓인 경영자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경영자들의 위기관리능력은 글로벌 환경에서 역(逆)시너지 증폭 효과를 막고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위기를 관리하면서도 성장 동력을 찾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다면 초우량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훨씬 유리할 것이다.
옥포해전 당시 장군은 옥포 선창에 줄지어 정박해 있는 왜선을 보고는 무엇보다 당황하는 군사들을 안정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자신의 긴장감도 풀고 부하들의 동요도 막고자 “망동하지 말고 산처럼 정중히 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라는 호령을 내린다. 최고경영자가 솔선수범해 앞장서는데 따라하지 않을 임직원이란 없다. 이순신의 태산 같은 엄중한 태도는 군중을 안심시키고, 전열을 가다듬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리더십이란 잘 먹이고, 잘 재워 준다고 발휘되는 게 아니다. 싸워서 이길 사기 진작과 승리의 비전을 심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체성의 경영, 창의성과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이순신 리더십은 실전에서 잘 드러난다. 정확히 실행해야 할 방법으로 전투에 임하고, 솔선수범했다. 사인(私人)은 없고 철저히 공인(公人)으로써 이순신만 있었던 것이다.
어느 조직이건 의사결정의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에게 있다.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움직이고, 힘을 과시하는 듯하나, 홀로 있을 때에는 한없이 고독하다. 고독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깊은 고독 속으로 파고들 때라야 열쇠처럼 스르르 풀린다. 그 속엔 명징한 깨달음과 달관이 함께 한다. 때로는 물러섬과 쓰린 마음으로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물러서서 지키는 심용(沈勇)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리더십은 개인 고유의 역량이자,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개인의 무기이다. 리더십을 철저한 아날로그로, 개인이 갈고 닦는 수신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장군이 얼마나 고독했는지 알 수 있다. 장군은 7년 전쟁 1,593일 간의 일기 속에 36회나 홀로 앉아 괴롭고 외로워 견딜 수 없다고 적고 있다. 고독하지 않으면 장군이 아니리라.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홀로 뜬 눈으로 저 바다를 노려보고, 백성들이 도륙되는 참담한 현실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승리를 위한 고뇌와 의지는 장군을 한없이 고독하게 했다. 1593년 7월 15일자 일기에서 장군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들어오니 나그네 회포가 어지럽다. 홀로 배 뜸에 앉았노라니 마음이 몹시 산란하다. 달빛은 뱃전에 비치고 정신도 맑아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닭이 울었다.
특히 이때에는 전라좌수군의 본부를 경상도 땅으로 옮긴 때였다. 그런 저간의 사정으로 마음은 더욱 착잡했을 것이다. 아무리 태산같이 동요하지 말라고 휘하 수군들에게 명령했지만, 한없는 걱정에 장군의 마음은 때로 흔들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조선 백성의 운명에 강고하게 뿌리내린 장군의 심지를 뒤흔들 수는 없었다. 흔들릴수록 뿌리는 더욱 굳게 저 칠흑의 남해 바다에 가서 내렸다. 그곳엔 간악한 적이 언제 기습을 감행해 올지 모르는 긴장감이 늘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졌다.
홀로 빈 마루에 앉았노라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 충청수사가 와서 활을 쏘고 저녁밥을 함께 먹었다. 달 아래 이야기할 때 옥저 소리가 처량했다. 오래도록 앉았다가 헤어졌다. (1594년 6월 11일)
이날 밤 바다 위의 달빛은 대낮처럼 밝고 물결은 비단결 같은데, 혼자서 높은 다락위에 기대었노라니 심사가 몹시 어지러워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596년 2월 14일)
이날 밤은 바람이 몸씨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아 잠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밀었다. (1596년 10월 20일)
때로는 초조하고, 내면에 이는 한 개인으로서의 감회가 장군의 온몸을 전율처럼 훑고 지나갔다. 불면의 밤이 길어질수록 장군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슴을 찌르는 시편들을 적어 나갔다. 이순신은 장군이면서 선비였다. 그가 남긴 시문(詩文)들은 인간 본연의 내면성을 잘 보여준다. 그의 심상에는 늘 달과 피리와 수루가 함께 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인문학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 그리고 보면, 임란 승리의 원천은 장군의 내면에 있다. 그 내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제승당 찾는 이른 봄엔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며 나그네의 심상을 어지럽힌다. 나는 장군이 밤을 지새웠던 제승당 수루에 올라 장군의 시구를 되뇌어 본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閑山島 月明夜)
수루에 혼자 앉아 (上戊樓)
큰 칼 옆에 차고 (撫大刀)
깊은 시름하는 차에 (深愁時)
어디서 일성호가는 (何處 一聲羌笛)
나의 애를 끓나니 (更添愁)
-⟨한산도가(閑山島歌)⟩
한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水國秋光暮)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驚寒雁陳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憂心輾轉夜)
새벽달 창 너머로 활과 칼을 비추네. (殘月照弓刀)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적을 노려보는 애끓는 심정은 우리가 잘 아는⟨한산도가⟩에 잘 나타나 있다. 반면, 이순신 서정시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한산도야음⟩은 팽팽한 긴장상태를 서슬 푸른 칼이 튕겨내는 달빛과 비유해 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2행의 ‘안진(雁陳)’은 좌수영 위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군대의 진영[軍陣]으로 비유해 극한의 일체감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날아가는 기러기떼조차 장군에게는 군진으로 읽힌 것이다. 이순신의 관찰력과 집중력이 이 시에는 잘 드러나 있다. 시를 지을 당시 장군은 한산도의 푸른 앞바다를 더럽히는 적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깊은 전략에 고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칼은 적을 겨누고 자칫 긴장의 끈을 놓을지 모를 자신을 겨누기에 장군은 장검을 내건 벽을 바라보며 잠 못 이루었다.
칼 만드는 도검장인 태귀련과 이무생을 통해 새겨 넣은 장검의 글귀는 장군을 추스르고, 서릿발 같은 무인다운 기상이 늘 스며들게 했을 것이다. 나는 현충사에서 보았던 그 장검의 검명을 아로 새기며, 경제위기에 맞설 경영자로서 자세를 가다듬어 본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장군의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잡을까 싶어 그를 읽는다. 이순신은 깊어가는 한산 앞바다에서 무념무상의 경지로 내게 다가온다. 나는 생각해 본다.
사지를 넘나들며 적을 상대하는 장군에게 적은 외부의 적과 사내정치에 골몰하는 내부의 적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외부의 적은 막아 싸울 수 있으나, 내부의 적은 임금이고 나라이자, 백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이기에 대항할 수 없는 무한 고독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명분은 실제를 모르고, 적은 이를 알고 간사하게 이간질 해댔다. 장군은 이중의 적에 쌓여 동시적 대치상태의 갑갑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장군은 오랜 전쟁에 핍진했다.
장군의 일기에는 몸이 아팠다는 기록이 무려 135번이나 나온다. 그중 1594년에 40번, 1596년에는 47번이나 된다. 적이 쏜 총탄에 맞은 후유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극도로 염려하는 마음이 불러일으킨 결과일 것이다. 49세에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자신의 흰 머리카락을 뽑으며 효를 생각한 장군의 절대고독은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날을 회상해 보는 데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본래 장군은 “변방의 근심을 평정하고 나면, 고아한 은사(隱士)의 귀거래사나 읊으며” 살고자 했다. 모든 걸 내려놓는 집착 없는 삶이 이순신이 지향했던 삶의 항로였고, 잃을 게 없는 삶 자체였다. 그러나 그에겐 평범함 삶의 바람이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국란에 맞서 떨쳐 일어서야만 했다.
장군에겐 무인다운 강직함만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 아래 장군이 남긴 이 편지글은 ⟪난중일기⟫ 등에서는 나오지 않는 글로 정읍현감(1589.12~1591.2) 재임 시절에 쓴 것으로 알려진다. 장군의 선비다운 모습이자, 신선답게 유유히 살고픈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장군에게 이런 면도 있었는가 싶다.
산이 높아 하늘이 멀지 아니하고, 물이 맑아 신선을 금방이라도 만날듯하다 하시니, 참으로 느껍습니다. 온갖 꽃이 피고 버들잎이 새로운 봄철과 단풍이 물들고 국화가 향기로운 가을철 중에서 어느 때가 가장 좋은지요. 나와 같은 속된 관리는 그저 분주하기만 하여 함께 구경할 길이 없으니, 전일에 나에게 “신선의 연분이 없다”고 조롱하던 그 말씀이 참으로 정확한 논평이었습니다.
이순신은 고독했기에 버릴 수 있었고, 버릴 수 있기에 고독했다. 모든 것을 버렸기에 다 얻었다. 그가 좆고, 그를 따르는 것은 권력과 등지는 것이었다. 권력과 등짐으로써 세상을 품었다. 이순신은 난리를 평정하고 나면 은사로서 세상 밖에 묻히고자 했다. 이런 장군의 절대고독은 절대사명에서 비롯된다. 작은 꿈이 있던 장군이었지만, 전란의 피비린내는 그에게 역사의 소임을 다하도록 맡긴다. 이순신에게 남은 것은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길을 태산처럼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오늘날 격변의 21세기를 살아가는 경영자들에게 경영이란 무엇일까? 경영은 어느 정도 자족하는 상태를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수많은 임직원과 처자식이 경영자로서 나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벌고자 하는 행위가 경영이라면 그건 1차원적인 생각이다. 경영자란 상품과 재화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자이다. 그런 사명이 있어야 치산이재(治産利財)를 통해 세상을 더욱 살맛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이순신을 만날 때마다 경영자로서 지녀야 할 ‘절대사명’이 무엇일지를 새삼 되새기며 옷깃을 여민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