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기 코시모 데 메디치는 매우 개인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비록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냉혹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목적 이외에는 그 어떤 소유욕이나 명예욕 따위의 동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당신보다는 우리 집안의 훌륭한 이름과 명예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이익보다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은 정당하고도 진실된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 나는 내 일에 전념하면 됩니다.”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의 <코시모의 생애>에 나오는 이 말은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코시모의 상인적인 태도를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자기 가문의 이익 추구에 전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해 그들의 이익을 돌보도록 허용하는 이러한 태도는 초기 르네상스 시기에 공존했던 여러 양식들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우회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주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구상에 대해 후원자들의 간섭이 없었던 점 또한 그의 태도를 설명해 준다. 후원자는 자금을 대 주고 제작 계획의 목적에 관해 최소한의 충고만을 했을 따름이고 예술가는 자신의 영감에 충실했다. 위대한 미술과 위대한 인물은 바로 이렇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자유 속에서 자라났고 번성했다.
오늘날 이익 창출과 무관한 비효율적 프로세스들을 없애고 오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는 것은 곧 고객 및 시장 지향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고객지향은 기업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의 지표다. 위대한 기업에는 고객지향적이지 않은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에서 일할 수도 없다. 모든 직원들은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 그것이 내부 고객일 수도 있고 외부 고객일 수도 있다. 기업의 업무는 모두 함께, 서로를 위해, 기업에 돈을 지불하는 제품 구매자나 서비스 구매자를 위해 이루어진다.
서로를 위해 함께 힘을 합쳐 업무를 수행하고 성과를 내는 것은 멋진 일이다. 이러한 전환을 처음으로 실현한 곳이 바로 독일의 잡화매장 데엠이다. 기업의 전 직원이 진심으로 업무에 전념하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다. 문제는 기업가 자신이 이런 업무 풍토를 방해하고 파괴한다는 사실이다.
관료적인 경영방식에서는 기업에서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와 업무를 구분한다. 그리고 이들 부서에는 상사 노릇을 하는 부서장들이 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명예욕과 야심이 가득하다. 그들은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부서의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한다. 직원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면 그는 다른 간부들과 자신의 상사에게 제대로 실력을 뽐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부서가 매출을 10% 더 올리는 것이 고객에게 무슨 이득이 될까?
시장과 연결된 성과를 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업무가 된다. 직원의 업무 행위는 최종적으로 외부고객을 위한 것일 때 가치창출을 하고 값진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관료주의 기업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직원들은 대부분 가치창출과 관련 없는 일을 한다. 우리 경제에는 여전히 관료주의가 일상적으로 퍼져 있다. 그들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들이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행정, 계획 수립, 지시, 통제, 정치 등에 쏟아 붓고 있다.
일의 의미를 발견하면 직원이 알아서 한다
구글의 일하는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곳의 모든 직원들은 자기만의 작은 왕국을 갖고 있다. 각자 개성에 맞게 자기 방식대로 일터를 꾸민다. 그에 관한 규정이나 지침은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옳고 그른 것을 말하지 않으며, 각자 스스로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물론 구글도 성과를 사랑한다. 그러나 행위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성과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지 어떤 업무를 수행하느냐가 아니다. 그들은 성과지향적이지 않은 일에는 가차 없이 등을 돌린다. 그 결과, 구글은 몇 년째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닐스 플레깅은 기업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미를 돈으로 대체하는 순간 의미와 더불어 기업의 존재 이유도 증발해 버린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돈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성과를 내는 사람은 돈을 원하지 않는다
경영자는 대개 자신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고용한다.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몇 년 뒤에 자기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사람을 자기 밑에 들이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영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중간관리자로 선택하고, 중간관리자 역시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직원으로 뽑는다.
그러나 성과를 낼 줄 아는 인재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이나 지위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과제를 원한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최대한 신선한 문제를 원한다.
기업의 직원들은 전체 결과를 통해, 모두가 협력해서 거둔 팀의 탁월한 성과를 통해 빛을 발한다. 그리고 모두 함께 마음껏 축하 파티를 즐기면 그걸로 족하다. 개인의 성과가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것으로 여겨질 때 그 성과를 모두 기뻐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둔다면, 이는 질시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탁월한 기업의 직원들은 스스로 원해서 회사에 머문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꺼이 힘써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공정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돈이나 승진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들은 무언가 의미 있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만큼 가치 있는 일을 원한다. 무언가 성과를 이뤄냈을 때 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인력개발이 아닌 애정으로
사람의 성격을 발전시킬 수 있다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적어도 기업에는 주입식의 인성 개발 기능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압적으로 이끌고 가려는 기업가는 완전히 구시대적 사람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의 인사부서를 대체할 최선의 대안을 역시 구글에서 찾을 수 있다. 구글의 전 직원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자금으로 매년 8천 달러씩 지원 받는다. 조건은 단 하나, 업무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직원들은 이 돈으로 재교육을 받고, 자기계발에 힘쓰고, 모자란 공부를 한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사랑’과 ‘경제’, 이 둘은 늘 어울리지 않은 개념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강화하는 가치평가를 이처럼 리더가 먼저 시작하면 주변에 확산된다. 가장 단호한 형태의 가치평가는 사랑이다. 사랑은 베푸는 것이지만 또한 대단히 까다롭고 요구 수준이 높다. 사랑은 상대에게 똑같은 사랑을 요구하면서 애착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돈과 무관하게 열정을 갖고 일하거나, 아니면 그냥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일한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거나, 아니면 그냥 자신의 시간을 파는 것이다.
애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결코 도태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성숙해지며 강해진다. 열정은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성장이란 목표가 아니라 그저 애정을 갖고 하는 일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효과일 뿐이다. 그들은 의무감으로 일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끊임없이 칭찬을 하거나 돈으로 보상을 할 필요도 없다.
열정은 열광을 낳고, 열광은 추종자를 낳는다. 그 어떤 것도 결국 사랑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치 수많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그들 시대를 사랑했고, 그들이 뛰어 들어 만드는 창조적 예술품들에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듯, 이런 자세가 실질적이며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