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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통섭형 지식과 전략 캠퍼스 이순신 장군의 통섭형 지식과 전략 캠퍼스 휴가를 자청해 집필 관련으로 남해 한려수도 일대를 돌아보았다. 남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이토록 많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군은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도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줄로만 알며 살았다니! 400여 년 전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그를 만나며 남다른 생 각을 다시 하게 된다. 23전 23승의 무결점 완벽한 승리야 익히 아는 바이지만, 승리의 원천을 만들어 낸 ‘이순신적’ 힘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장군 관련 자료를 다시 훑으며 이순신적 힘이 인문과 타학문 분야가 결합된 ‘통섭적 발상’에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가 익히 아는 거북선은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과 함께 핵심 .. 2016. 3. 29.
장영실, 조선의 과학을 만들다 잃어버린 성장 동력, 해법은 우리 내부에 있다 역사에서 찾은 창조혁신 성장 정체기에 직면한 글로벌 경제의 화두는 ‘신성장 동력’ 찾기다. 이에 우리 역사가 얼마든지 경영자산이 될 수 있다며, 우리 역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에 집중했던 조선의 세종시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자격루는 600여 년이 지난 2007년에 복원돼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첨단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중앙포토 오천년의 우리 역사 자산은 얼마든지 우리 경영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시대다. 광휘의 불꽃으로 타오른 600여 년 전 세종대왕 시대를 주목하는 건 위대한 벤치마크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어떤 점이 오늘날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2016. 1. 21.
세종의 창조적 역량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2015. 8. 24.
태조 이성계, 혁명에서 창업으로 가는 기나긴 세월을 인고하다 혁명에서 창업으로 인생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하물며 역사의 순간에 다가오는 기회란 더 말할 나위 있으랴. 변방의 무관 시절부터 스스로 이룩한 실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중앙 정계의 실력자가 되기까지 이성계의 인생은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 결정지었다. 구체적 실적을 증명해 냄으로써 군내에서 지위는 급부상하고, 이를 계기로 요동 정벌을 통수하는 권한이 주어졌다면 이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욱일승천의 기세와 같은 것이다. 이제 운명은 그의 선택 여하에 달려있었다. 뽑은 칼을 어디로 휘두르느냐에 따라 정벌군 대장으로서 영예를 한껏 드높일지, 하늘 아래 최고지선의 자리를 넘볼지 결정나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 그의 입지전적 창업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성계는 1335년 화령부(함경.. 2015. 5. 28.
고도의 학습력으로 경쟁력을 갖추다 고도의 학습력으로 경쟁력을 갖추다 장군은 유학을 공부하다가 22세가 되어서야 장인의 권유로 무예를 선택하여 무관직에 진출했다. 글방에서 수학하는 동안 비범한 면모와 뛰어난 재능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통감⟫,⟪대학⟫ 등 어려운 책들을 샅샅이 읽었으며, 책을 읽을 때에는 대의에 집중했다. 나아가 전략적 연관성에 주목했다. 임진왜란과 왜, 왜의 작전과 전략상의 상관관계, 그에 맞선 조선수군의 대응책 등은 모두 이런 학습역량에서 나온 것이다. 장군의 전략을 유심히 살펴보면 병법에 통달했음을 알 수 있다. 사용한 용어를 보면, ⟪손자병법⟫,⟪오기병법⟫,⟪무경칠서(武經七書)⟫,⟪독송사(讀宋史)⟫등에 통달했고, 역사 인식도 대단히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젊어서도 무장으로서 진도(陳圖)를 자세히 그릴 정도로.. 2015. 4. 7.
수신은 경영자다움을 얻는 마지막 관문 수신은 경영자다움을 얻는 마지막 관문 기업의 크기는 경영자의 그릇 크기와 같다. 이 말은 공기(公器)로써 기업의 사명뿐만 아니라, 기업 자체를 그릇으로 본다는 뜻이 된다. 바다를 강에 담을 수 없듯, 경영자의 그릇 크기는 당연히 수신철학의 내재화에 달려있다. 개인적 내공은 경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순신장군은 어떤 고통과 아픔에도 스스로 책임을 다하고 희생과 인내력을 견지해 나갔다. 이런 혁신 리더다운 면모는 스스로 늘 수신의 철학을 갈고 닦은 데서 잘 나타난다. 이순신과 관련된 일화들이 있다. 1579년(35세)에 이순신은 충청병사의 군관이 된다. 그런데 그가 거처하는 방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옷과 이불뿐이었다. 또 근친(覲親)하러 갈 때에는 반드시 남은 양식을 주관자에게 돌려주었다. 오.. 2014.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