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돌아 보라, 거기에 당신이 있다
육신이 가고자 하는 것을 영혼이 따르게 하소서
가끔, 뒤를 돌아보라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선 다시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한다. 말이 지쳐서 쉬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쉬려는 것도 아니다. 혹시 말과 함께 몸이 너무 빨리 달려 미처 자기의 영혼이 뒤쫓아오지 못했을까 봐 자기의 영혼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려 자기 영혼이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말을 타고 다시 달린다는 것이다.
*****
수도원 원장님이 두 수도사에게 밀을 베라고 일을 시켰다. 한 수도사는 쉬지도 않고 하루종일 일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수도사는 이따금씩 쉬어가며 일을 했다. 저녁이 되어 베어놓은 밀을 보니 쉬지 않고 일한 수도사보다 쉬며 일을 한 수도사가 벤 밀이 더 많았다.
쉬지 않고 일한 수도사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쉬며 일한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 저는 이따금 쉬면서 일했지요. 그러나 그 때마다 날을 갈았답니다."
무딘 날을 가지고 쉴새 없이 일하는 것보다 중간 중간 쉬더라도 날을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비결이었다.
당신은 쉬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이었는가? 진정으로 ‘쉬어’ 보았는가, 아니면 ‘쉬는 일’을 해 본 것인가?
‘쉰다’ 는 것은 육신에 담겨진 영혼을 닦아내, 본래의 참 빛깔을 찾을 수 있도록 영육을 치료해 주는 의료 행위이다. 그러므로 심신을 위로하고 그 노고를 치하하는 것,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줌으로써 밝은 에너지가 자신의 내부로부터 다시 솟구쳐 오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쉬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다면, 모든 것을 잠시 미뤄 두고, "이제 떠나라!" 어디론가 가서 지치고 멍든 당신의 영혼을 달래 주어라. 자연 속에 뛰어들어 세상을 잠시 잊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신’을 발견해 보라. 육체에 향유를 붓듯 영혼의 맑은 샘에 진정한 자기 모습이 가득 차오를 수 있도록 당신은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 그럴 때 참다운 ‘자기’가 찾아지고, 삶은 영감과 생명력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돌아 올 때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 전혀 다른 생각,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다시 뛰어 들어야 한다. 자신만큼 소중한 존재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 자신을 함부로 굴리는가? 가끔, 자신을 들여 다 보지 않으면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내 것이 되어 주질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자신을 아끼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분명 남과 다르다.
사회 전반에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공을 위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에 만인에게 공통되는 모델이란 없다. 또 똑같은 인생의 코스도 없으며, 살아가는 방법이 적힌 매뉴얼도 없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삶은 가변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필연적인 귀결점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가변적인 조건에 당신은 인생을 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아라. 누구든 인생이란,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각자가 창출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현실에 모든 영육이 다 닿아 없어지지 않도록, 가끔은 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폭발적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사람은 결코 꿈을 꾸지 못한다. 꿈을 꿀 시간도 없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만이 꿈을 통해 앞으로 나갈 일들을 생각하게 되고, 영혼이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 내고, 이로 말미암아 자신이 설 곳을 확실히 깨닫기 위해 자신만의 시간을 내야 한다.
그러할 때 진정 자신의 현 위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목적을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방법이 된다.
다음의 글은 이것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다른 무엇에 대해 아무리 많은 글을 읽더라도 그것은 머리 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그려졌더라도 그것은 그림일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자리를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색깔들은 이미 거기에 없으니까.
예전의 범주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선입관을 떨쳐 버리고, [마음의] 먼 이국에 가 보라. (출처:『침묵의 반역자, 디트리히 본 회퍼의 생애』, 레나테 빈트의 글 편집)
당신은 앞의 인디언 일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정말로 소중한 것은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일 텐데 바쁘게 살다 보니 영혼을 돌볼 틈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었다. 이런 자신을 보며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성공을 말하고 싶은가?
진정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버리고 떠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언제나 빨리 흐르기만 하는 물은 깊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한곳으로 쏠리는 것은 결코 삶의 깊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삶은 자신의 뒤를 돌아 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당신의 인생에 부여된 내일이라는 시간도 오늘과 똑같이 다 소진해 버리도록 만든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이 되어 돌아가다가 어느날 문득, 멈춰 버리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자기 영혼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인디언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아라. 그리고 가끔 달리던 말을 잠시 세워 두고 세상 옆에 서서 남들이 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해라.
그들 중에 어떤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나방처럼 불길 속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가?
삶은 결코, 이렇듯 미련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에는 수레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산더미 같은 짐을 싣고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농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지한 농부는 채찍만 가하면 말은 어떠한 짐이라도 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채찍을 너무 많이 맞은 말은 마침내 거품을 물며 쓰러져 죽어 버린다.
사실 당신도 어떤 면에선 이와 같지 않은가? 자신이 끌고 가기에 너무 무거운 ‘욕망의 짐’ 만을 가득 올려 놓고 채찍만 휘두르며 살아 온 게 우리의 일생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인생은 순간 순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해 진다. 당신 삶의 여정에 있어 지금 이 순간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권하건대 이 시간에 인디언처럼 자신의 뒤를 돌아 보는 여유를 가져라. 그리고 자신이 놓여 있는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전략을 다시 짜라. 잘 짜여진 전략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준다.
중간중간에 수정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당신은 무서운 속도와 집중력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당신에겐 선택할 것도, 집중할 것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속도와 집중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 내에 확실하게 일을 끝내고, 다음 일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다. 일을 질질 끌고 나가는 것은 최악의 상황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차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 오른 것처럼 인생이라는 변화무쌍한 게임에 임해 적어도 남들이 달리는 적정속도 정도는 맞춰 주어야 한다. 그럴 때 예기치 않은 사고의 위험도 피할 수 있다.
인생에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어려울수록 ‘지금’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밀고 나아가라. 집중이야 말로 삶을 성공적으로 끌고 나가는 비결이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을 잃지 않고, 앞을 보고 나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길은 열린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업이나 우리가 꿈꾸는 삶은 알고 보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사람들은 언제나 신념을 가진 자들 앞에 굴복한다. 내가 사는 열정적인 삶의 모습에 나를 바라보는 이들은 자석 앞의 쇠붙이처럼 끌려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믿고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나와 다르다.
내가 만든 길로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하라. 그럴 때 인생은 성공에 바짝 가까워 진다. 정신없이 살다가도 가끔은 인디언처럼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진정 누가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리고 다시 가면 된다.
이제 자신에 대해 알게 된 당신은 생의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아는 시점에 이르렀다. 자신 안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깊고 어두운 우물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나와라. 그리고 걸어라. 이미 오래 전에 당신은 세상의 편에 서서 자신을 바라 보고,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되었다. 우물 속의 안락을 더 이상 그리워 하지 말고 뛰쳐 나가라. 그래야 진정 당신은 자기 속에 숨어 있던 ‘진정한 나’와 만날 수 있다.
삶은 자기가 선택한 모험과 늘 함께 하게 된다. 이 신기한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전경일, <진정한 성공을 위한 자기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