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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창조의 CEO 세종] IT의 정수는 이런 것이다

by 전경일 2009. 2. 3.

 

조선은 농업이 필수적인 나라였다. 따라서 ‘농시(農時)’ 즉,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는 때를 안다는 것은 농사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이터였다. 하지만 세종 전까지 우리나라는 자체적인 달력이 없어서 중국의 달력에 맞춰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만 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또, 자주 국가라는 자존심 또한 말이 아니었다.

이런 인식하에 세종은 당의 선명력과 원의 수시력을 비교 연구해 가장 베스트 요소만을 취합해 우리의 달력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달력인『칠정산 내ㆍ외편』은 나온다. 이는 비단, 농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과학과 IT 기술의 집합체는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 세종시대 모든 발명품ㆍ개발품에 그대로 녹아 흘렀다.

 

세종 시대 과학과 IT기술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주요 발명품들은 그야말로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이런 일대의 대작업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는 나타나지 않는 유산들을 남겨 놓았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긍심이었다.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발명품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는 실로 우리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나? 그 발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간의(大簡) 개발 프로젝트

 

세종은 재임 14년경부터 대간의(大簡儀)ㆍ소간의(小簡儀) 등 천체관측 기구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간의’란 ‘간단하게 만들어진 기구’라는 뜻으로 갈릴레이의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정밀한 관측기구였다고 할 수 있다. - 어떤 개발품이나 이 ‘간단함(simplicity)’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 이를 위해 세종은 정인지와 이천을 ‘간의’ 개발 프로젝트에 어싸인(assign) 시켰다. 이천이 팀장이 되어 엔지니어 그룹을 데리고 제일 먼저 완성한 것이 바로 나무로 된 간의였다. 이어 구리로 주조한 간의가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 졌고, 그와 동시에 이 기기들을 설치할 대간의대가 만들어졌다.

 

 

 

 

자격루(自擊漏) 개발 프로젝트

 

그 다음으로 세종은 새로운 표준시계의 필요성을 느껴 자동시간측정 기구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 ‘자동’임에 주의하라. - 물시계의 일종인 자격루(自擊漏)는 바로 이 때 개발된 기술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물시계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세종은 이때에 이르러 자동물시계를 처음으로 만들게 했다. 이 자격루 프로젝트에는 R&D의 거장 장영실과 이천ㆍ김조 등의 손길이 미쳤다. 그들은 심혈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자격루를 만들어 서문관 보루각에 설치했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그보다 업-그래이드된 두 번째 자격루를 멋지게 만들어 냈다. 이 장치는 시ㆍ경ㆍ점에 따라 자동적으로 종ㆍ북ㆍ징을 쳐서 시간을 알리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일종의 자명종이었다.

 

 

 

 

옥루(玉漏) 개발 프로젝트

 

자격루 프로젝트를 완료한지 4년 뒤, 장영실은 자격루에 천상을 표시할 수 있는 정교한 기능을 첨가해서 옥루를 만들었다. - 자격루는 천문기능이 없는 순수한 자동물시계였다. - 옥루는 물레방아의 회전에서 동력을 얻어 작동하는 원리로 만들어진 천상시계였으며, 자동인형시계였다. 중국 송ㆍ원 시대의 모든 자동시계와 중국에 전해진 이슬람 물시계에 대한 문헌들을 철저히 연구한 끝에 장영실은 이를 독자적이며, 독창적으로 고안해 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중국이나 이슬람의 것보다도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옥루는 경복궁 안에 있는 CEO의 숙소 옆 흠경각((欽敬閣))에 설치되었고, 가끔 세종은 현장을 방문해 과학과 IT 기술의 진수를 보며 개선점을 찾고자 했다.

 

 

 

 

앙부일구(仰釜日晷) 개발 프로젝트

 

앙부일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해시계이다. 이는 일반인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이러한 모양의 해시계는 다른 나라에서 카피(copy)해 온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모델이었다. 앙부일구는 그 모양이 ‘솔을 받쳐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이 장치는 단순히 해시계를 발명했다는 측면 외에 더 중요한 과학적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다른 나라의 해시계가 단순히 시간만을 알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앙부일구는 바늘의 그림자 끝만 따라가면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게 해주는 다기능 시계였다. 또한 앙부일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구로 된 해시계였다. 앙부일구가 반구로 된 점에 착안해서 그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관도 역시 장영실이 맡았다.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개발 프로젝트

 

‘낮과 밤에 시각을 측정하는 시계’로 일성정시의가 있다. 이것은 원나라 때 중국에 초빙되어 왔던 이슬람 천문학자 찰마노정(札馬魯丁, 자말 알 딘, Janmal al Din, Germal Eddin)의 기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 장영실을 중국에 유학 보낸 이유 중에 하나가 외국 기술의 벤치마킹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일성정시의는 이슬람 기술의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천평일구(天平日晷) 개발 프로젝트

 

군용 해시계로 개발된 것이 천평일구이다. 이 장비는 군사작전 중 ‘말 위에서도 시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기기였다. 1자 2치 5푼이었다니 실제로 휴대용은 아니었는데 - 지금처럼 손안에 쏙 들어오는 핸드폰이 나오기 전에 군대에서 사용하던 휴대용 무전기도 ‘휴대용’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컸었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천평일구도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봤을 때, ‘휴대용’이라고 부를 만 하다! - 이것은 천문관측을 통해 방향을 확정한 다음 해시계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정초ㆍ장영실ㆍ김빈ㆍ이천ㆍ김돈 등이 투입되었고, 세종19년 4월에 개발 및 제작 과제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혼상의(渾象儀) 개발 프로젝트

 

혼상의란 검은 천으로 둥글게 만든 공 모양에 별들을 그려 넣은 것으로 그것이 물의 힘으로 자동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겠금 만들어 진 기구이다. 그리면 낮에도 하늘에 별들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혼상을 하루에 한번씩 회전시켜 보면, 별이 뜨고 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도 측정할 수 있었다. 세종 19년에 제작된 것이 기록으로 최초. 이것은 지름 71.6cm인 구(毬)에 칠포를 입혀서 만들었다.

 

 

 

 

측우기(測雨器) 개발 프로젝트

 

측우기는 강우량 측정용으로 쓰인 관측 장비로, 현대적인 강우 계측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는 갈릴레오의 온도계 발명이나, 토리첼리의 수은기압계, 그리고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20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기상 관측 장비였다. 측우기의 발명으로 조선은 새로운 강우량 측정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를 농업에 응용하게 되어 농업 기상학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측우기의 발명으로 정확한 강우량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홍수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규표(圭表) 개발 프로젝트

 

계절의 변화와 24절기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해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장치이다. 규(圭)에는 그림자의 길이를 알 수 있게 눈금을 새겨 놓았으며 표(表)는 그림자가 잘 비쳐지도록 되어있는 기둥이다. 이러한 규표에는 원시적 카메라 장치가 달려 있었다. 그것을 영부(影符)라고 하는데, 바늘구멍 사진기 원리를 보여주는 어둠상자를 눈금 부분에 달고, 그것을 눈금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영부를 통해 들여 다 보면, 해의 영상이 하얀 작은 동그라미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이를 노몬(gnomon)이라 불럿다.

 

 

 

 

칠정산(七政算) 개발 프로젝트

 

우리나라 고유의 달력인『칠정산』은 수학ㆍ천체ㆍ물리학적 지식이 총동원돼 완성된 역작이다. 우리 고유의 달력 개발은 실용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과도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그리하여 세종은 정인지ㆍ이순지ㆍ김담 등에 명해 달력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드디어『칠정산』이 편찬되었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칠정산 내편』이다. 이 달력은 곽수경의 수시력을 바탕으로 서울의 위도에 따라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이 달력은 명(明)의 수시력과 대통력의 장점을 벤치마킹해 만든 것이었다. 그 후속편으로『칠정산 외편』은 원대 이후 중국에 들어 와 있던 이슬람 역법을 소화해서 재편집한 것이다. 그것은 명의 회회력의 잘못을 바로잡은 우수한 한역본으로 평가 받았다.

 

『칠정산』이 완성된 1442년 당시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천문 계산을 할 수 있는 나라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체로 중국과 이슬람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시절에 세종은 조선에 맞는 우리의 달력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세종은 실제 천문 관측을 위해 동사남북 여러 산에 천문학자를 파견한 조선 최초의 국가 CEO였다. 세종의 끈질긴 노력뿐만 아니라, 자주 IT 국가의지가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국가든 기업이든 CEO가 ‘때’를 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비록 오늘날 CEO들이 세종시대처럼 ‘달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시간’만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언제 ‘때’를 만들 것인지, 언제가 ‘때’인지, 언제 ‘때’를 맞이할 것인지 등.

 

 

 

 

*  눈에 보이는 결과 너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바로 ‘가능성’과 ‘자긍심’ 같은 것들이다. 이것에 주목하라. 당신이 뭔가를 성취해 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정서도 함께 얻는다는 말이다.

 

 

 

 

*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만큼 훌륭한 일은 없다. 우리에 맞는 무엇인가 강력한 것을 만들어 내라. 그것이 당신의 ‘의지’를 돋보이게 만든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