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세종만큼 확고한 국가 경영 마인드와 강한 의지로 국정을 밀고 나간 CEO도 없었다. 조선 초에는 실로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기 위한 대역사(大役事)가 가장 중요한 시대적 요청이었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세종은 신생 조선의 골격을 당대에 온전히 갖춰 놓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실로 한 사람의 시대에 이루어지기에 믿어지지 않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모든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에 복합적으로 수많은 사업을 추진해 나가며 성공한 예는 일찍이 세계 역사에서 찾아 보기 매우 힘들다.
세종이 재임했던 32년 기간 동안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사업들은 국가와 민생을 위해 하나같이 중요한 국가 인프라 구축에 해당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같이 단기간에 이룩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기간의 장구함 만큼이나, 그것을 달성했을 때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예를 들어, 공법(貢法)은 그 확정에만 26년이 걸렸고, 법전 정비에는 17년, 오례의(五禮儀) 정리에는 30여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또 「훈민정음」창제에 십 수 년, 『고려사』편찬에 30여년, 6진 개척에는 10여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이 과정에서 집현전을 필두로 다양한 조직에 소속된 요원들은 수많은 자료들을 참고하였고, 수많은 기획과 실험과 실행을 감행 하였다. 그 만큼 세종이 얻어 낸 성과들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달성한 실로 값진 것들이었다.
[장기적 과제와 민생문제를 동시에]
과학 및 IT기술 발달에서 세종이 보여준 이와 같은 실험 정신은 오늘날 기업에서 하고 있는 R&D 활동 이상의 노력이 투여된 것이다. 세종 대에는 이러한 장기적인 정책 과제가 시급한 민생문제와 더불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다.
세종은 프로젝트에 항시 철저를 기했다. 법전의 정비와 공법의 제정 과정에서 세종의 이러한 완벽주의는 잘 드러난다. 세종대의 빛나는 문화는 CEO 자신이 설정한 신흥국가 건설이라는 강력한 의지에서 나왔다. 여기에 변화하는 세상을 통해 수시로 들어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물, 즉 새로운 제도와 문물이 강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더불어 CEO로서 세종 자신의 놀라운 정신력과 강인한 의지, 그리고 성실성은 끈기 있는 과제 수행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세종시대에 추진했던 어떤 사업도 결실을 맺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국책 사업들 은 세종이라는 젊고 유능하며 사려 깊은 CEO를 만나 세상 밖으로 스카웃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칙과 표준의 설정]
세종의 경영 성과 중에서 가장 크게 평가되는 것 중의 하나는 원칙과 표준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향후 500여년을 ( 그 당시에는 몇 년이 될지 몰랐던.) 이끌어 나갈 ‘조선의 스탠더드(standard)’가 마련되었다. 세종은 국가적 인프라가 되는 것에서 출발해 국가 경영의 토대를 닦았다. 국가 통치의 표준인 법전, 음률의 표준인 황종률의 설정, 도량형의 표준인 황종척의 설정 등은 바로 과학기술 및 음악 분야에 나타난 표준화의 한 예였다.
도량형은 경제의 기준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일반인이 사용하는 저울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공조참판 이천에게 이를 고치라고 지시했다(세종 6년 6월). 그 결과 1,500개의 정확한 저울이 만들어 졌다. 세종은 이를 반포하고 더 제작하여 민간인이 사서 쓰도록 했다. 또 세종 13년(1431년) 4월에는 포백척(布帛尺)도 교정하여 통일했다. 또한 공문서에 모든 글자는 정자(正字)로 쓰게 하고 숫자는 단자(單子)를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혼란을 미리 예방하고자 했다. 단자란 지금 우리가 수표나 어음 등에 쓰는 한자처럼 ‘一’이나 ‘二’대신 ‘壹’이나 ‘貳’를 쓰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세종 7년 박연은 해주 산 검은 기장 100알을 나란히 쌓아 그 길이를 황종척 1척으로 정하였다. 즉 기장 한 알의 길이를 1분으로 하고 10알을 쌓아 1촌으로 하여 9촌을 황종의 길이로 삼았다. 여기에 1촌을 더하여 황종척 1척으로 삼았다. 『악학궤범』에서는 황종관의 길이는 9촌, 둘레는 9분, 옆면의 넓이는 810분이고, 거기에 기장알 1,200개가 들어가면 황종율에 맞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표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꾸준한 연구와 끈질긴 노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CEO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