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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르네상스 경영학

위대한 리더들을 만든 힘: 작은 경험도 소중히 여겨라!

by 전경일 2025. 5. 12.

전 세계인의 식문화를 바꾼 리더

1950년대의 어느 날, 미국의 주방기기 회사 릴리 튤립 컵 컴퍼니의 한 영업 책임자는 캘리포니아 인근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멀티믹서 제품을 8대나 구입해 갔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직접 그곳을 찾아갔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그 많은 멀티믹서가 왜 필요했는지 단번에 알게 되었다. 가게는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사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 영업 책임자는 주인 형제에게 새로운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게 해주면 총 판매액의 0.5%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형제가 제안을 수락한 덕분에 그는 1955년 일리노이 주에 메뉴, 매장구조, 운영방식, 금색 아치의 로고와 주인 형제의 이름까지 고스란히 딴 가게를 열 수 있었다. 그 식당이 바로 맥도날드였고, 믹서기 영업 책임자는 맥도날드의 실질적인 창업자 레이 크록(Ray Kroc)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크록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중 한 명이자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20세기 미국인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50중 한 명이다. 그는 한 기업의 CEO를 넘어 전 세계인의 식문화를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크록의 사후에도 맥도날드는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기준 총매출 270억 달러를 기록했고 전 세계에 약 33,500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브랜드 가치만 359억 달러에 이를 정도다. 그는 53세의 나이에 어떻게 햄버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어둠 속에서 묵묵히 기다리다 기회를 포착한 안목의 힘

1902년에 태어난 레이 크록은 고등학생 때부터 레모네이드 가게, 악보 가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다른 사업 재간을 보였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했고, 전역 후에는 종이컵 영업사원과 피아노 연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을 이어 나갔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사업 노하우를 익히다 53세 때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안목의 힘은 여기서 처음으로 발휘된다. 대부분 하던 사업도 정리할 나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새로운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고 도전했다.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업 책임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는 1955년에 맥도날드 체인점 1호를 개점한 것이다.

 

6년 뒤 그의 안목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잘되자, 맥도날드 형제는 브랜드에도 욕심을 냈다. 형제는 크록에게 맥도날드의 상표권을 넘기는 대가로, 향후 15년간 로열티에 해당하는 자금 270만 달러를 일시불로 요구했다. 성공을 확신한 크록은 어렵사리 외부 투자를 받아 맥도날드 형제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했다. 결국 이 계약 하나로 레이 크록은 자자손손 성공을 보장받게 된 반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먼 미래를 보지 못한 맥도날드 형제는 황금알 낳는 거위를 차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53세가 돼서야 맥도날드를 창업해 하루아침에 성공했다는 데 놀라워한다. 하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재능을 갈고닦다가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았을 뿐이다. 내가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아침을 맞이하기까지 나는 30년이라는 길고도 긴 밤을 보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실력을 닦다가 때를 만나 날아오르듯, 그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하찮을 수도 있는 종이컵, 믹서기 영업에 30년 동안 매진하면서 얻은 높은 사업 안목과 과감한 실행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끈기와 의지로 현장을 누비는 자가 이긴다

레이 크록의 성공은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크록의 경영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늘 현장을 중시했던 그는 직접 발로 뛰면서 조직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맥도날드 사무실 벽에 색색으로 지역별 매출 현황을 표시한 미국 전역 지도를 걸어놓고 임원들도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도록 주문했다. 특정 지역에 어떤 매장이 있는지, 운영자는 누구인지, 매출은 어느 정도인지,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머릿속에 입력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매장 정보를 머릿속에 효과적으로 입력하기 위해 단순 암기보다는 현장을 직접, 그리고 꾸준히 방문할 것을 강조했다.

 

현장을 중시한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경쟁사의 비밀을 알아내겠다며 야밤에 경쟁사의 쓰레기통을 뒤진 것이다.

 

경쟁업체의 운영 비밀을 알아내고 싶으면 그들의 쓰레기통을 뒤지면 된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그 안에 들어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새벽 2시에 경쟁업체의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보며 전날 고기는 몇 상자나 썼는지, 빵은 얼마나 썼는지를 살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이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조차도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영업사원 시절부터 억만장자가 된 이후까지 그를 한결같이 지탱해 준, 척박하고 치열한 현장을 발로 뛰어다닌 끈기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끈기와 의지가 있었기에 쉰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었으며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야밤에 경쟁사의 쓰레기통을 뒤질 수 있었던 것이다.

 

크록의 고백처럼 그의 인생에는 30년간의 긴 어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을 깰 수 있었던 힘 역시 어둠 속에서 길러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나긴 터널 속에서도 끈기와 의지를 갖고 최선을 다해 힘을 기르는 자가 결국 이기는 자임을 레이 크록은 보여준다.

 

문외한도 인내를 갖고 기다리면 창조를 이뤄낸다

1932년에 태어난 이나모리 가즈오는 대학을 졸업한 후 쇼후공업에 취직했다. 대학에서 무기화학을 전공한 그가 정작 회사에서 맡게 된 업무는 파인세라믹스 관련 업무였다. 기대와는 다른 직무에 실망했을 법도 하지만, 이나모리는 묵묵히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며 실력을 쌓아 나갔고, 이때의 경험은 이나모리로 하여금 장차 교세라의 주력 분야가 될 파인세라믹스에 눈을 뜨게 했다.

 

세라믹스란 고온에 구워 만드는 도자기, 유리, 시멘트 등을 말하는데, 그중에서도 파인세라믹스(fine ceramics)는 고순도로 정제된 원료 분말을 구워내 절연체, 내열재 등 특정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것을 말한다. 관련 지식이 거의 없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했던 이나모리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이 분야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27세가 되던 해인 1959, 그는 교세라의 전신이 된 교토세라믹을 창업한다. 교토세라믹은 파인세라믹스에 관한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며 세계 100대 기업 교세라로 성장한다. 교세라는 그 외에도 반도체, 통신, 사무기기 등 다방면에 걸친 사업을 전개하며 2012년 기준으로 무려 235개 자회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후 이나모리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추락하던 일본항공(JAL)을 맡아, 파산 직전이던 기업을 3년 만에 흑자 구조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이나모리 회장의 놀라운 성공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통신, 항공 등등 모두가 자신의 비전공 분야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창조는 문외한이 하는 것이지 전문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업무는 곧 수행이다

이나모리 회장에게 있어 업무는 곧 수행(修行)이다. 어릴 때부터 불교에 심취했던 이나모리는 현업에서 물러난 1997년에는 수계(授戒)를 받기도 했다. 일본의 전통과 잇닿은 이런 철학은 그의 경영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업무를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갈고닦고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수행이라고 말한다. 이나모리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늘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갈고닦는 기회로 여겼다.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면 내일이 저절로 보일 것이고, 내일을 열심히 살면 일주일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최선을 다하면 다음 주가 보이고, 다음 달이 보이고, 내년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매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루하루 수행하듯 걸어간 정진의 과정이 오늘날 굴지의 대기업인 교세라를 키운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성공은 결국 수행하듯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있다.

 

레이 크록과 이나모리 가즈오의 성공에는 공통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도제들이 그러했듯 작은 일들을 소중히 여기고 전력을 다했다는 데 있다. 현재의 초라한 경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갈고 닦아 미래의 자산으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