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혁신은 그것을 이루어 내기만 하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약속한다. 경영혁신은 기술 혁신, 제조 혁신 등 다른 종류의 혁신보다 더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하멜과 프라할라드는 조직이 전술적, 전략적으로 취할 수 있는 우위가 대부분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전략 등은 빠르게 전파되어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그 어떤 다른 요인도 조직원들의 동기부여와 모집, 활용 등과 관련해 새로운 방법을 창출한 경영혁신가의 리더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멜과 프라할라드는 경영혁신의 대표적 리더로 한 남자를 꼽았다.
바로 빌 고어다.
1958년, 빌 고어(Wilbert L. "Bill" Gore)가 듀폰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청산한 후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을 때, 그가 당면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고어는 17년 동안 시달렸던 관료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대신에 그는 혁신에 열중하는 회사, 상상력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회사, 호기심 많은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발명하고 투자하는 회사를 꿈꾸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고어의 꿈은 ‘고어 앤 어소시에이츠(W. L. Gore & Associates, Inc.)’라는 회사에서 고스란히 실현되고 있다.
이 회사가 확립한 여러 경영원칙들은 현대 조직의 많은 정설과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개인 소유의 회사인 고어는 증시에 상장되지 않아 증권회사들에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 50여 년 동안, 이 회사는 대담하고도 근본적인 경영혁신을 실험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고어 앤 어소시에이츠는 20억 달러의 연매출을 올리고, 세계 50여 개 공장과 1만여 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다.
수평적인 창살구조를 만들라
고어는 수평적 조직이다. 고어에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고, 관리 계층도, 조직도도 없다. 고어의 지도부는 스스로 관리하는 소규모 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팀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목표를 가지고 있다. ‘재미있게 일하면서 돈을 벌자!’
빌 고어는 창살처럼 생긴 회사를 꿈꾸었다. 창살구조는 조직의 모든 사람을 개인 대 개인, 팀 대 팀으로 직접 연결한다. 창살구조는 중심점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조직은 정보가 중간에서 막히지 않고 사방으로 흐를 수 있는 대인관계의 네트워크라는 뜻이다. 창살구조에서는 상사가 아니라 동료에게 봉사하며,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도 동료와 직접 협력할 수 있다.
‘보스’ 대신 ‘리더’가 돼라
고어에는 공식적인 계급이나 직함이 없지만, 어떤 동료들은 ‘리더’라는 호칭을 얻었다. 고어에서 상급 리더는 하급 리더를 임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들이 그럴 만하다고 판단할 때 리더를 선출한다. 리더 호칭을 받은 사람은 팀을 이끌고 일을 완수해내는 능력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고어에서 팀 성공에 크게 이바지하고 지속적인 성과를 이룩하는 사람들은 추종자를 모을 수 있다. 리더로서 봉사해달라고 거듭 요청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에 ‘리더’라는 단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런 명칭을 지닌 고어 직원들의 비율은 전체에서 약 10퍼센트 정도이다.
‘보스’ 대신 ‘후견인’이 돼라
신입 직원이 조직을 탐구하고 파악하도록 돕기 위해, 고어에서는 신입 직원 개개인에게 ‘후견인’을 붙여준다. 이들 후견인은 특수용어를 쉽게 풀어주고, 업무를 소개하며, 초심자를 안내하는 베테랑들이다. 몇 달 동안, 신입직원들은 여러 팀을 옮기며 교육을 받는다. 각 팀에 머물 때마다 신입직원들은 부분적으로 여러 가지를 시험해본다. 신입직원이 여러 기술 사이에서 적성을 알아내고 특정 팀의 필요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도록 돕는 것은 후견인의 몫이다. 또한 직원은 자유롭게 새로운 후견인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팀은 신입직원을 선택할 때,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장난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라
고어의 모든 직원들에게는 1주일에 반나절의 ‘장난 시간’이 허용된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창의적인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온전히 그 시간을 쓸 수 있다. 그저 주요 업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된다.
직원들은 누구나 고어의 혁신적인 제품들 대부분이 이런 장난스러운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969년, 빌 고어의 아들이자 그의 후계자였던 로버트 고어(Robert W. "Bob" Gore)가 우연히 PTFE를 잡아당겼다. 그 결과 그는 폴리머, 즉 늘어난 PTFE가 질기면서도 구멍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어텍스라는 상표로 더 잘 알려진 PTFE는 회사의 최대 사업을 이룩하는 수많은 제품의 출발점이 되었다. 고어의 제품혁신 비결은 뜻밖의 발견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라도 혁신가가 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에서 출발한다.
명령 대신 헌신하라
고어의 신념에 따르면, 체념하여 명령에 복종하는 것보다 기꺼이 헌신하는 것이 몇 배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고어의 또 다른 이념의 핵심에는 이런 믿음이 깔려 있다. “모든 헌신은 스스로 우러나온다.” 실제로 고어의 직원들은 업무와 책임을 동료들과 협의하여 스스로 분담한다. 고어에서 업무는 배정되는 게 아니라 오직 본인의 의사에 따른다. 하지만 자기 팀의 성공이 회사에 얼마나 공헌했는가에 따라 직원을 평가하고 보상하기 때문에, 그들은 일을 피하기보다는 더욱 헌신하려고 한다.
직원들은 어떤 요청에도 ‘아니요’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만, 한번 이루어진 약속은 신성한 맹세라고 여겨야 한다. 따라서 신입직원들은 능력 이상의 책임을 지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주의를 받는다. 서투른 약속은 그들의 보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헌신의 정도를 협의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보상은 도덕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정당하게 지불된다. 사실상 모든 직원들은 진솔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일하겠다고 서명한 그대로 할 것입니다.”
자유롭지만 철저하게 하라
직원들에게 유례없는 자유를 허용했지만, 고어는 게으름뱅이를 위한 회사가 아니다. 1년에 한 번씩, 직원들은 종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20명의 동료들에게서 자료를 수집한다. 사람들은 이 정보를 평가대상자와 같은 분야에서 뽑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보상위원회와 공유한다. 직원 각자는 종합적인 공헌도에 따라 사업부서의 다른 직원들과 비교해 등급이 결정된다. 이 등급이 상대적인 보수를 결정한다. 이러한 고어의 보상 시스템에서는 연공서열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그저 많이 공헌할수록 더 높이 평가받는다.
인간적인 대기업이 되라
고어는 대기업이지만 개인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 개발 전문가, 영업사원, 연구원, 화학자, 기술자는 모두 한 건물에서 일한다. 그들은 전화나 이메일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도록 권유받는다. 또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떤 건물이나 공장에서도 200명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사업부서의 직원이 늘어날수록 불가피하게 인간관계는 줄어들고 최종 제품과도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인내하라
끈기는 고어 혁신의 또 다른 요소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위험을 찾아내어 최소화하는 절차와 결부된다. 고어는 인내심이 강한 회사로 유명하므로, 직원 몇 명의 관심을 끄는 프로젝트라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인내란 손실을 참는 것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어에서 인내는 반드시 신중함을 수반한다. 회사는 결코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때까지 큰 도박을 걸지 않는다. 고어는 큰 도박에서 한 번의 베팅으로 성공을 거두길 기대하기보다, 내기를 자주 걸고 또 판돈을 모으기 위해 오래 버티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끈기가 승리를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