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현 기자 승인 2024.11.14 18:20
소설 '순행열차' 발간, 한국안데르센상 우수상 수상한 전경일 작가
전경일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2003년, 40대를 앞두고 '어떻게 살 지'를 알고 싶었던 한 직장인이 쓴 책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마흔으로 산다는 것>. 소설가를 꿈꾸었던 그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에 들어가 근무를 했고 틈틈이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인 소설가로 변신했고 동화 작가로, 출판사 대표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올해 그는 한국안데르센상 우수상(동화)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11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남순행'과 '북순행'을 소재로 '순종황제 망명 미수 사건'을 그린 역사소설 <순행열차>를 펴냈다. 식민지 시대, 한국전쟁 등 우리 현대사 속에서 숨어있던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비극의 강을 해소'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동화를 통해 남녀노소, 세계인들이 함께 공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경일 작가를 만났다.
한국안데르센상 우수상 수상과 소설 <순행열차>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올 11월이 남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30여년 동안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한국안데르센상의 경우 동화로 상을 받으면서 동화 쪽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지난 겨울에 집중적으로 대여섯편의 동화를 썼는데 그 중 하나가 상을 받았다. 출판의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순행열차>는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는데 짧은 기간 안에 써야했기에 집중을 했다. 이제까지 43권의 책을 냈는데 나이가 들면서 원숙하게 세계를 새롭고 깊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경륜이 생기면서 더 좋은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번에 발간한 <순행열차>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909년 1~2월에 일제의 식민지 전략으로 순종황제가 열차를 타고 부산, 마산 등 남쪽(남순행)과 평양, 신의주 등 북쪽(북순행)을 순행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순행이 일제에 의해 기획된 것이기에 우리로서는 큰 의의를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또 백성들이 순종이 납치됐다고 생각해 철도변에 누워 열차를 막으려 한 적도 있었고 평양과 의주에서는 일장기를 절단하고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민족적 자의식을 일깨운 일들도 있었다. 게다가 그해 가을부터 일제가 집중적으로 의병을 말살하는 정책을 쓰면서 의병들이 만주로 가 독립군이 된다.
이 소설은 황제의 입장에서 순행을 해석하기보다 민중의 자각을 꾀하는 선각자의 입장에서 풀어냈고 특히 주인공이 16세의 궁녀 '김초심'이다. 김초심은 궁녀였다가 의병에 참여하고 독립운동까지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1902년에 고종황제가 만든 비밀 첩보조직 '제국익문사'의 기록도 담아냈다.
남순행에서 순종이 일본의 군함에 올라갔다는 기록을 보면서 망국의 상황에서 황제가 무엇을 느꼈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을사오적'이 속해있던 친일파 모임 일진회에 이미 30만명이 모인 상황이었다. 이미 친일파가 장악한 상황에서 황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이완용이 순종을 윽박질렀다는 기록도 있다. 열차에 타면서 순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망명을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고종이 망명을 시도하려했지만 되지 않았고 그래서 아들 순종이 망명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백성들이 황제를 망명시켜 분조(조정을 둘로 나누는 것)를 시키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순종 망명미수 사건'으로 극화한 것이다.
제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때가 뉴라이트가 극성을 피우는 시기다. 책에도 남겼지만 지금 이 시기는 '이완용의 망령이 배회하는 시대'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누구를 위한 근대화냐는 것이다. 한국인을 위한 것이라면 황실이 없어지지도 않고 합병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일본의 전쟁에서 우리가 총알받이가 되는 근대화였다. 완전한 거짓말쟁이 제국주의의 선봉을 서고 있는 셈이다. 식민지 근대화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사진=다빈치북스)
언제부터 책을 쓰시기 시작하셨는지?
시작은 자기계발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다른 책을 쓸 여력이 없었다. 자기계발서는 꼭지별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소설보다 수월한 면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3년, 마흔을 앞두고 '마흔이 되면 어떻게 살 지'를 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이 엄청나게 팔렸다. 지금도 이 책의 작가로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다. 책이 잘 팔린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분들이 90년대 들어 사회과학이 퇴조하면서 설 자리가 좁아졌고 나이가 마흔을 바라보게 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이 지금 60대들이 정치에 관심이 높고 정치 의식도 높은데 나의 장년과 노년은 어떻게 가야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이를 경제, 경영 쪽에서만 풀어가는데 인문학에서 한 번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2월에 <시골 부모>라는 책이 또 하나 새로 발간되는데 20년 만에 <마흔으로 산다는 것>의 속편을 쓰는 셈이다(웃음). 2007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당시 병석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하신 말씀으로 한 꼭지를 썼는데 그게 쌓이고 쌓이다가 올 6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의 추억까지 넣었다.
하지만 <시골 부모>는 저희 부모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살아온 우리 부모세대들의 이야기다. 이분들은 일제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 베이비붐, 산업화와 근대화, 민주화, 정보화 사회, 스마트폰 시대까지 큰 격변을 겪은 분들이다. 이분들의 진국같은 이야기를 채집하듯이 내놓은 책이다. 누군가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정리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썼다.
이후에 소설로, 동화로 영역을 확대하셨는데
어릴 때 소설가가 꿈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펄벅의 <대지>를 읽고 '저 책보다 더 큰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시작이었고 대학 4학년 때 쓴 중편 소설로 통일문학상을 받으면서 더욱 꿈을 키웠는데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다보니 기자 생활도 하고 미국 유학 다녀와서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그러다가 <마흔으로 산다는 것>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2007년에 연구소를 차리면서 오로지 저술에만 힘을 쓰게 됐다.
소설 <조선 남자>는 최근에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이 됐고 쿠바 혁명과 꼬레아노의 이야기를 담은 <백만년 동안 내리는 비>, 종군기자의 눈으로 한국전쟁을 기술한 <마릴린과 두 남자> 등을 썼다. 일본 도쿄로 신혼여행을 갔던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자신을 좋아해 준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았던 일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장르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소설에 맞는 이야기는 소설로, 동화에 맞는 이야기는 동화로, 영화에 맞는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가는 것이다. 이야기감에 맞추어 간다.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사상이다. 글을 통해 어떤 철학과 메시지를 던지고 싶으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의 사상은 바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작업인데 그 글 안에 작가의 세계관이나 인행관 철학 등이 내재되어 있다.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사상이다.
올해 한국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전경일 작가(앞줄 왼쪽). (사진=아이코리아)
창작동화 <사막의 꼬마 낙타 상인>으로 한국안데르센상 우수상(동화)을 수상하셨다
2018년에 모로코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아틀란티스 산맥을 넘다가 낙타를 모는 소년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동화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해 문맹이라고 놀림받았던 소년이 병에 걸린 아버지를 대산에 쌍봉낙타를 키우고 장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동화로 풀어냈다. 상을 주신 덕분에 앞으로 동화를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화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동화를 쓰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지
일단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과 눈을 맞춰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라. <사막의 꼬마 낙타 상인>에서 '사막에서는 모든 이가 걸음으로써 평등하다'는 표현을 넣었는데 자화자찬같지만 전 이 구절 때문에 상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화는 우화적인 성격이 있어야 하고 당장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의인화 등을 통해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나오는 어린이 책들은 '동화'라기보다는 '어린이 소설'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 옛날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작품이 가장 이상적인 동화다. 좋은 동화는 사실 타겟이 없다. 어린이나 성인이나 노인이나 모두 어린 시절을 겪었고 어린 시절을 살고 있다. 세계에서도 동화가 가장 수출 여건이 좋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몇학년용' 이런 식으로 타겟을 잡고 있다. 그건 동화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이고 소설이 동화보다 더 팔리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게 가져가야하는데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이 되지 않고 문학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마릴린과 두 남자>의 경우 한국전쟁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 종군기자'의 눈으로 봤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과거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을 보면 대부분 전쟁을 겪은 당사자가 화자가 되는데 이는 전쟁을 감정적으로 보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일단 눈물부터 나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겪었던 일이기에 객관적인 시각을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이제는 눈물을 닦고 외국 종군기자가 취재하듯 완벽한 타인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한국전쟁을 돌아볼 때가 됐다. 비극의 강을 해소해야한다. 물론 그런 작품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다고 작가가 이를 놓으면 중요한 테마를 묵혀두는 것이다.
한강 작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사태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이를 스웨덴 한림원이 인정하며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아픔의 근본은 바로 한국전쟁이다. 식민과 5.18 사이에 놓인 것이 분단이고 지금의 대립 역시 다 분단과 연결되어 있다. 일제의 혜택을 누린 이들이 지금도 남북 대립 이데올로기로 먹고 살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해결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남북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문화가 대주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진정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찾으면서 민족사의 모순, 세계사의 모순을 파고들고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성취를 이루어낸다면 우리 문학은 또다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번 노벨상을 계기로 작가들이 일제 식민지 근대화, 식민사관, 분단 등을 계속 파고들어야한다.
문학은 누가 가해자냐 피해자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해원(가슴속에 묵힌 원통함)을 풀어주는 것이다. 남북이 지금 서로 용서할 수 없다며 원한을 깊게 만드는데 용서라는 것은 결국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용서다. 이를 문학이, 예술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전쟁터에서 장미꽃을 주어야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고 예술이 해원의 가치를 들어야 세계인들도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대중을 따라가야하는 이도 분명 있어야하지만 선도하는 이도 있어야한다.
전경일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순행열차>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시라. 읽어보시고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나오는 반역적 흐름, 반민족적 요소가 있다면 그것의 시작은 무엇이고 해결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지금 출판사(다빈치북스)도 운영하고 계신데 독서 인구 감소 등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분명 있지만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고 있다. 전자책이 있다고 하지만 종이책만의 매력인 '사유하고 메모하는 것'은 전자책이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종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종이 안의 글과 생각을 읽는 것인데 거기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10분이라도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면 책의 재미을 느끼면서 계속 읽게 될 것이다.
인생의 길을 가려면 동굴이나 어두운 곳을 지나야하고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횃불이다. 횃불은 나무 막대기에 솜을 붙여 불을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름이 있어야한다. 유튜브나 OTT 등도 분명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밝기는 엄청 밝지만 휘발성이 굉장히 강해 결국 불을 붙여도 오래 가지 못한다. 어두운 곳을 가려면 오래 지속되는 횃불을 피워야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순행열차>를 출간하고 OSMU(하나의 소스, 콘텐츠를 여러 상품 유형으로 전개, 개발하는 것)를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영상화를 위해 관련 업계와 접촉하고 있다. 황제의 망명을 위해 다양한 인물들이 활약하는 재미있는 내용의 작품인 만큼 영화나 OTT로 소개되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소설 두 편을 준비 중이다. 하나는 <명화극장>으로 제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 있던 두 극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국 현대사와 묶어 재미있게 담아낸 소설이고 또 하나는 갑신정변 주역 중의 한 명이었던 '변수'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변수>다.
특히 <변수>는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간 변수의 이야기가 재미 과학지에 조그맣게 칼럼으로 실린 것을 보고 연구를 시작하고 자료를 계속 뒤졌는데 생활 문제 해결 등으로 인해 계속 시작을 미루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됐다. 근 30년 만에 시작하는 이야기로 내년 말 출간 예정이다.
출처 : 내외방송(http://www.nwtn.co.kr)